이끼 (2010) - 강약조절의 실패 보는 것

 

 

 저는 웹툰이라는 장르의 애독자는 아닙니다. 지금까지 완독하거나 챙겨보는 작품은 손에 꼽을 정도입니다만 윤태호 작가의 '이끼'는 어쨌든 그 몇 안되는 제가 본 웹툰에 포함되어 있습니다. 모 포탈에서 연재 당시 워낙 입소문이 많이 퍼져서 대체 어떤 작품이길래 그런가 하고 얼핏 봤다가 밤을 꼬박 새고나서 다음화가 나오려면 아직 1주일이 남았다는 사실에 발을 동동 굴렀던 기억이 나네요. 당시에는 저 같은 사람이 한 둘이 아니었지만요. 이러한 인기를 바탕으로 이끼는 웹툰으로서는 파격적으로 영화화에까지 이르게 되고 올 여름 보시다시피 그 결과물이 나왔습니다.

 

 웹툰 '이끼'가 이렇게 큰 성공을 거둔 이유로는 여러가지를 꼽을 수 있겠죠. 특유의 스타일리쉬하고도 서늘한 분위기, 스릴러 장르로서의 짜임새 있는 이야기 구조, 시대적 담론과도 이어지는 정치적 주제 의식(나중에는 지나치다 싶을 정도로 확대해석하는 사람들이 보이기는 했습니다만.. 뭐 순전히 개인적 생각입니다) 등등. 그런데 저는 오늘 영화 '이끼'를 보면서 웹툰 '이끼'가 가진 가장 큰 장점을 저는 이제서야 알게된 것 같습니다.

 

 아, 영화 리뷰를 보러왔는데 웹툰 이야기만 해서 벌써부터 질려하시는 분이 있으실지도 모르겠네요. 이 글은 영화 이끼에 대한 리뷰가 맞습니다. 다만 제가 느낀 이 영화의 문제점 이야기를 하려니 원작이 떠오를 수 밖에 없더라구요. 그 문제점이 무언고하니 바로 '강약조절'입니다. 쉽호흡이라고나 할까요.

 


 강우석 감독은 원작의 이야기 거의 전부를 영화 이끼에 넣어버렸습니다. 변용되거나 잘려져나간 몇몇 부분이 있긴 하지만 사건 진행만 놓고 보면 영화는 매우 꼼꼼하게 원작을 따라간 편입니다. (캐릭터와 결말의 변화 이야기는 뒤에서 다시 할게요) 그 결과 영화 이끼는 무려 2시간 40분에 가까운 긴 러닝타임을 갖고 있는 영화가 되어버렸습니다.

 

 러닝타임이 길다고 나쁜 영화는 절대로 아니지요. 하지만 긴 러닝타임을 갖고서 그 사이에 강약 조절을 제대로 못하는 영화가 있다면 저는 그 영화를 좋게 볼 수 없습니다. 그리고 이런 점에서 저는 영화 이끼의 가장 큰 문제점이 바로 강약 조절에 있다고 생각합니다. 이 문제는 원작의 장르인 웹툰이 가지는 속성에 기하는 부분도 꽤 있다고 생각하는지라 어쩔수 없이 원작 이야기를 할 수 밖에 없겠네요. 웹툰 이끼는 한 화 한 화마다 전체 줄거리의 일부이면서도 어느정도 그 자신의 독립적인 흐름을 갖고 있었습니다. 약으로 시작해서 강으로 끝나는 크레센도 같은 흐름이 이끼에는 각 화마다 존재했습니다. 생각해보면 이끼의 명대사나 명장면은 모두 매 화의 마지막 장면에 있지 않았나요? 각 화는 비록 짧지만 저마다 정점을 하나씩 가지고 있었습니다.

 

이는 연재 웹툰-아니 만화의 속성 때문에 당연한 결과입니다. 상식적으로 생각해봐도 매 화의 마지막 장면이 임팩트가 없다면 다음 연재분을 찾아보고 싶은 마음이 독자들에게는 생기지 않기 때문이죠. 원작 이끼는 매 화마다 이러한 크레센도가 반복되는 흐름이 매우 적절했다고 생각합니다. 한 화 한 화가 다음화가 궁금해서 미칠 지경으로 사람을 만드는 매력이 있었지요.


 

2008-11-24 21시 14분 58초

 

 그런데 이걸 영화로 만들면 달라집니다. 앞에서도 말했듯이 영화 이끼의 이야기 흐름은 기본적으로 원작의 각 화를 이어붙인 것이거든요. 그런데 매 화의 끝부분에 악센트를 박아넣었던 원작과는 달리 영화는 그러한 방식을 사용할 수 없습니다. 2시간 40분짜리 영화가 3분에 한번씩 정점이 반복되면 일단 모양새도 좋지 않고 보는 사람도 질려버리지요. 결국 원작에서 매 화마다 정점으로 처리되었던 부분이 영화로 옮겨지면서 그 강도를 줄여버리고 그냥 큰 이야기 흐름 속에 넣어버린 모습이 되었는데 이는 어쩔 수 없는 선택이기는 하지만 그 결과물이 마음에 들지는 않아요.

 

 좀 더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원작에서 윤태호 작가가 신경써서 배치했던 대사나 장면이 영화 속에서는 너무 평범한 화면으로 변해버렸어요. 그러한 상당 부분은 이 영화의 주제와 직접 관련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말이예요. 초반에 유해국이 경찰관과 대사를 나누는 부분이 당장에 생각나는 예시네요. '이장님이 그렇게 하셨는데요'라는, 원작의 컷에서 정적까지 느껴지던 대사가 이 영화에서 표현된 모습을 생각해보시면 이해가 어느정도 되실거라고 생각합니다.

 

 또한 원작 웹툰의 경우는 한 화 한 화 끝날때마다 앞에서 언급한 정점이 끝나고 작품의 주제를 곱씹어 볼 만한 공백의 시간이랄까, 그런게 있었는데 영화의 경우는 그러한 여유가 불가능해진 것도 많이 아쉬워요. 전 원작을 본 축에 속하지만 원작을 안 보신 분이라면 이야기를 따라가는데에만해도 벅차지 않을까 하는 걱정이 들기는 했습니다. 앞에서 언급한 원작의 정치적 주제의식이 그 때문에 영화에서는 상당히 희석되었다고 느끼기도 했구요.

 

 강우석 감독이 이 영화에서 나름(?) 유머를 여기 저기 집어넣은 건 이러한 어쩔 수 없는 영화의 약점을 극복해보려는 노력이 아니었을까하고 생각됩니다. 영화화 과정에서 흐름 자체가 일정부분 늘어질 수 밖에 없다면 중간 중간 유머를 넣어서 악센트를 대신하는 것이라고나 할까요. 사람마다 다르기는 하겠지만 이 영화 속에서 몇 몇 유머는 웃음을 유발하는 역할을 충분히 합니다. 하지만 여전히 호흡 조절을 충분히 하기에는 부족하다는 생각이 드네요. 영화의 주제가 무거운지라 때로는 그 유머가 어긋나서 붕붕 뜨는 느낌도 없지 않았구요. 특히나 박민욱 검사의 경우는 영화 내내 거의 개그 캐릭터화 되었다가 마지막에 갑자기 무게를 잡고 나오니.. 이 부분은 캐릭터 관련에서 말하는 것이 낫겠네요.

 


 

------------------------------이하 영화 이끼에 관련된 스포일러가 존재합니다-----------------------------


 


 


 캐릭터에 관해서는 이미 많은 분들이 캐릭터의 원작 비교를 하고 계시고 많은 분들이 그러한 글에 질리실테니 여기서는 최대한 영화 속 내용만을 가지고 제 생각을 말해볼게요. 이동진 평론가님이 이번 영화 이끼 개봉에 맞추어 인터뷰한 이장 역의 배우 장재영에 의하면, 강우석 감독은 의도적으로 이장의 이미지를 바꾸었다고 합니다. 원작에서 이장은 인간을 초월한 절대적 악과 같은 존재이지만 영화에서는 인간으로 끌어내리는게 더 맞을 것 같다구요. 원작을 어떻게 변용하느냐는 감독의 자유니 그 자체만으로는 뭐라 할 것이 아니지만 저는 그 결과로 나온 새로운 이장 캐릭터가 영화 속에서 그다지 어울리지 않는다고 생각합니다. 영화 속에서 이장이 어느정도 인간다운 캐릭터가 되었다는 데에는 동의합니다. 영화 후반부에 수하들이 하나 둘 씩 죽어가는 장면에서 이장을 연기한 장재영의 표정을 보면 분명히 '나쁜놈'이기는 한데 약간의 연민같은 감정이 드는 것을 보고 저 자신도 놀랐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이러한 인간적인 이장 캐릭터가 영화의 클라이막스 부분과 심하게 어긋난다고 느꼈습니다. 이 영화에서 강우석 감독은 클라이막스 장면을 지나치다 싶을 정도로 강조하려고 한 듯한 인상을 주는데, 정작 그 클라이막스의 주인공인 이장이 어울리지 않으니 많이 김이 빠졌다고 할까요. 아들이 불타 죽는데 미친듯이 웃고 권총 자살 직전 광기에 차서 '대한민국을 대청소 해야 할꺼야'라는 저주를 내뱉는 이장의 모습은 원작의 '인간 그 이상의 존재'의 이장 캐릭터와 더 어울리지 않나 싶습니다. 고작 한 장면 가지고 그러냐라고 하실 수도 있겠지만 이건 영화의 절정 장면인걸요. 강우석 감독은 원작에서 등장하는 절정의 임팩트를 그대로 가져오고 싶었겠지만 글쎄요, 그 장면에서 절정의 본질인 이장 캐릭터를 바꿔버렸다면 장면에 약간의 수정을 하는 게 나았을 거라고 봅니다.

 

 그 외에 박민욱 검사 캐릭터의 경우도 영화에서 많이 변용된 캐릭터이지요. 앞에서도 말했듯이 지나치게 개그캐릭터화 되었다고 봅니다. 상당히 재밌는 변용이기는 했지만 그래도 이 캐릭터는 사건의 종말에 결정적인 역할을 하는 인물이니 좀 더 무게감을 주었으면 어땠을까 싶었지만.... 뭐 순전히 사견이니 이 부분은 넘기셔도 될거 같아요.

 

 아, 그리고 결말과 관련해서 빼놓을 수 없는 캐릭터 영지. 이미 평론가 리뷰에서 영지가 결말에서 결정적인 역할을 한다는 말은 들었습니다만은...  너무나 어색한 캐릭터로 느껴진 건 왜인지 모르겠네요.(심지어 연기까지말입니다!) 특히나 클라이막스 부분에서는 대사 한마디 한마디가 왜이렇게 어색하던지. 강우석 감독은 결말을 바꿈으로써 이 영화를 결국 영지에 관한 이야기로 만들었다... 라고 이동진 평론가님은 쓰셨습니다만 저는 뭔가 사족이라는 생각을 지울 수 없네요. 물론 스릴러에 반전 하나쯤은 있어야 한다고 생각하시는 분은 생각이 다르시겠습니다만. 강우석 감독도 영화 내내 영지의 역할이 적지 않을 것임을 암시하려고 복선 비슷하게 그녀의 장면을 계속 보여주기는 합니다. 그런데 저는 이렇게 바뀐 결말이 영화의 주제를 더욱더 모호하게 만들었다는 생각이 들어요. 안그래도 희석된 원작의 정치적 사회적 담론이 한 여자의 복수극으로 대체되는 이 상황은.... 

 

 

 

 결론적으로 말하자면 영화 이끼는 저에게는 실망적인 부분이 상당히 많았습니다. 강우석 감독은 이끼라는 스릴러물을 풀어내면서 여전히 그만의 실미도나 강철중 식 화법을 사용했다는 느낌도 강했구요. 하지만 제가 원작을 먼저 읽은 부류에 속하기 때문에 원작을 먼저 읽지 않으신 분은 저와 다른 느낌을 받으실지도 모르겠네요. 글을 쓰기로 마음 먹었을때 원작 비교는 최대한 하지 않으려고 했지만 의식적이든 무의식적이든 글에 반영되는 걸 보면 말입니다. 여러분은 어떤 생각을 하고 계실지 궁금합니다.